[화성신문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99]
빵과 떡, 그리고 피스타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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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기사입력 2021-05-03 [11:02]

▲ 김원석 협성대학교 교수 / 경영학박사     ©화성신문

필자는 지금 샌디에고대학교 경영학 교수인 스티븐 로빈스가 쓴 매니지먼트(경영학)2021년판을 번역(공역)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이 1987년경 처음 나왔을 때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굉장히 쉬운 영어로 썼기 때문인지 그 후 열다섯 차례나 개정하였다.

 

번역을 잘하려면 먼저 원서의 언어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우리말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말의 어휘 실력이 번역의 질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처음 생소한 경영학 용어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단어 하나 때문에 밤새워 고민하고 며칠, 몇 달씩 더 좋은 어휘를 찾기 위하여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효과성, 조직 충성도, 직무 몰입, 승승의 갈등 해결, 3의 방법 등의 어휘를 우리말로 옮길 때 조어하여 번역하기도 하였다. 로빈스 교수의 책을 20년 전에 8판을 번역하였고, 11판을 거쳐 현재 세 번째로 번역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 석사과정 때 이 책을 알게 되어 지난 30년 동안 교재로 삼아 강의했으니 이 책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천만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겨우 20년 전에 번역한 책이 학생들도 알아듣기 힘들 것 같은 한자 어투가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만 언어의 변화도 이렇게 빨리 변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무튼 다시 번역하면서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는 대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바꾸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성경번역 어휘들이 생각이 났다. 1911년 우리말로 성경전서가 대영성서공회에서 번역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세계여행은 힘들었고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중국어, 일본어, 영어 성경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더욱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는 고충을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2004년 성경전서를 개정 번역하면서, 이런 부분은 왜 수정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떡은 빵을 말한다. 2004년 새로 나온 카톨릭 성경은 이것을 빵으로 잘 번역하였다. 그런데 개신교 성경은 여전히 떡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당시 예수께서 잡수시던 것은 떡이 아니라 그들의 주식인 빵이었다는 것을 모두 안다. 부활하신 예수도 빵과 물고기로 식사를 하셨다. 따라서 이제는 빵으로 번역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요즘 떡을 일정량을 잘라서 냉동고에 넣었다가 아침에 주식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늘었기 때문에 그냥 떡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구약성서에는 이런 대목이 너무 많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야곱과 그의 형 에서가 먹었던 음식은 팥죽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렌틸콩 죽이다. 요즘 쥐눈이콩이라고 해서 영양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바로 그 렌틸콩으로 만든 스튜를 먹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봐 줄만 하다. 왜냐하면 110년 전에 렌틸콩을 아예 구경도 못했을 때이고, 렌틸콩 죽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야곱이 노년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떨어져서 아들들이 이집트에 양식을 얻으러 가는 장면에서, 야곱이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준비한 예물이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창세기 43:11)라고 한다. 마지막 두 가지는 이전 번역에서 비자와 파단행이라고 번역한 것을 개정한 것이다. 개정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감복숭아는 우리말 사전에 중동의 편도로써 열매를 먹지 못하나 기름을 짜서 쓴다고 말함) 영어 성경에는 피스타치오와 아몬드라고 번역되어 있다. 오늘날 피스타치오와 아몬드 열매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 이 두 가지 열매는 매일 먹는 견과류에 빠지지 않는다. 피스타치오와 아몬드 덕분에 성경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로 바뀌어 바로 머리속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문득 번역 언어는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 여름에 출간되는 매니지먼트도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우리말을 읽듯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tetkore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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