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153]
1등보다 2등이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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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기사입력 2021-03-15 [08:40]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필자가 쌍용그룹 자문을 하고 있을 때다. 쌍용그룹은 김성곤 씨가 창업한 회사인데 처음에 방직공장으로 시작하였으나 시멘트 사업을 주력으로 재편된 기업집단이었다. 나중에는 무역, 제지, 보험, 금융, 자동차까지 아우르는 굴지의 재벌그룹이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IMF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해 해체되고 말았다. 쌍용그룹에는 ‘2등 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김성곤 씨가 자주 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내용인 즉은 이런 것이다.

 

김성곤 씨가 겪어 보니, 사람들이 다 1등이 되겠다고 난리인데 자기가 본 1등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에 1등한 친구들을 보니 좀 이기적인 아이들이었다. 친구들 하고 어울리는 것도 피했고, 더군다나 친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자기 공부에만 집착하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 중에 아쉽게 1등이 안 되고 2등만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남들에게 신경 쓰고 남들의 어려움을 돕다보니 그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김성곤 씨가 내린 결론은 “이기적인 1등이 되기보다는 남을 돕는 2등이 되어야 한다”였다.

 

열심히 노력하되 남을 딛고 올라가서 그리고 남들 배려 안하고 굳이 1등 하려 하지 말고, 하나쯤 양보하고, 주변도 살펴보면서 2등에 만족하라는 교훈, 그것은 쌍용그룹의 문화가 되어 있었다. 거기서는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성취를 중시했고, 인화와 신뢰를 금과옥조처럼 여겼었다. 김성곤 씨의 이 ‘2등정신’은 정말 타당한 이야기일까?

 

비즈니스 세계는 냉정한 세계이다. 이익을 취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 더구나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승자독식이 만연하고 있다. 각종 경기에서 1등과 2등의 차이는 크다. PGA 마스터스 골프대회의 우승상금은 26억원 정도 되는데, 2등은 그의 60%인 15억원에 불과하다. 윔블던 테니스 경기의 우승상금은 무려 35억원이나 되는데, 2등은 그 50%인 16억원 정도에 이른다. 

 

임 사장은 이런 비즈니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손해를 안 보려고 한다. 주더라도 그 이상 꼭 받아내려 한다. 한번은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던 한 거래처에서 갑자기 어려움이 생겨 물건을 외상으로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거래처의 딱한 사정에도 동정이 갔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확실한 담보를 잡고 물건을 대주었다.

 

그런데 과연 비즈니스는 그런 것일까?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되고, 항상 이익을 내야하고 또 이겨야 하는 것일까? 요즘 뜻밖에도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고, 베풀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그 중에 미국 펜실베니아대 애덤 그랜트(Adam Grant) 교수가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류는 테이커(taker)이다. 이들은 자신이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을 받으려 한다. 두 번째는 기버(giver)이다. 이들은 자신이 받는 것보다 많은 것을 주려하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매처(matcher)이다. 이들은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유형이다. 이 세 부류 중 누가 성공한 사람일까? 그랜트 교수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테이커들의 성과가 제일 높고, 기버들의 성과가 가장 낮았다. 그런데 이건 평균 이야기이고, 최상위층엔 테이커가 아닌 기버가 있었다. 그러니까 기버는 도 아니면 모다. 

 

실적이 낮은 기버들은 너무 희생적으로 남을 돕다보니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정작 자신의 일을 잘 못한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실적이 높은 기버들은 남을 도움으로써 오히려 에너지가 확충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까? 성공한 기버는 테이커 못지않게 야심이 있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서도 몰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은 병적 이타주의이다. 남을 돕는데 있어서도 비전이 있어야 하고, 전략이 있어야 하고 창의성도 필요하다. 그랜트 교수는 이런 이타주의를 ‘이기적 이타주의’라고 했는데 필자는 이 보다는 ‘창의적 이타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친구를 돕는다고 할 때 딱하다고 나의 재산을 팔아 돕는 것은 맹목적 이타주의이다. 대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친구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창의적인 이타주의인 것이다. 아마 김성곤 씨가 보아온 2등들은 창의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남을 돕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도 2등을 했으니 말이다. 비즈니스 세계는 결코 승-패의 세계가 아니다. 서로 이기는 승-승의 세계다. 탁월한 성과를 내려면 나의 작은 노력으로 남이 크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먼저 도와야 한다. 내가 먼저 말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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