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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58]마음이 살아가는 두뇌 속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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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기사입력 2020-05-25

▲ 하수연 장안대학교 교수/ 교육학박사     © 화성신문

한 번쯤은 공원 연못 속 잉어나 물고기를 보면서 먹이를 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입을 뻐끔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먹이를 주면 우루루 몰려든다. 몰려드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한 어린이는 계속해서 먹이를 던져 준다. 물고기들은 먹이를 던져주는 방향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물고기들은 아무 걱정 없고 평화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먹이를 먹는 물고기는 한정되어 있다. 작고 빠르지 못한 물고기는 허탕만 치고 있다. 같은 연못에 살고 있는 물고기임에도 더 먹는 물고기가 있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물고기가 있다. 

 

비고츠키(Vygotsky, 러시아 인지심리학자)는 인간은 사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같은 환경에 살면 모두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못 속의 물고기를 보면 같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르게 성장하는 것은 단지 몸집과 민첩성만의 차이일까?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작은 물고기 옆으로 의도적으로 먹이를 던져주어도 언제 왔는지 몸집이 큰 물고기가 먹이를 차지했다. 이는 몸집과 민첩성의 차이뿐 아니라 생각의 차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욕구 미충족으로 인해 같은 사실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느린 물고기는 더욱 느리게 행동하고, 그 느린 행동이 몸에 배어 더욱 느려질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에 의하여 행동이 지배당하는 것은 물고기 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에픽테토스(Epiktetos, 1~2세기 그리스 철학자)에 의하면 ‘인간은 사물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지니는 견해에 의해서 장애를 입게 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고 때로는 그 생각으로 인해 행동의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도 같은 맥락이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대사가 한밤 중 에 그렇게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은 오로지 생각에 달렸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신다. 여기서 물음이 생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생각에 달렸다면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은 인간의 마음 즉 생각의 틀에서 나온다.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녀의 올바른 행동을 원한다면 자녀의 생각의 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각의 틀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다는 관점도 있지만, 환경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실존주의자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자유란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가 있지만 그들이 선택하는 환경은 제한적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출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가장 가까운 감각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을 경험하면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한 사실들이 그대로 생각의 틀로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이트(Freud,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에 의하면 인간은 이드(id)라는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본능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외부의 사실들은 본능에 의하여 판단되어 호, 불호, 기쁨과 고통이라는 정서가 첨부된 생각의 틀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생각의 틀은 단지 상황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선택하는 감정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외부의 자극을 생존과 연관시키며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간다. 많은 학자들이 만5세경까지 성격의 기초가 형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세상을 해석하는 생각의 틀이 거의 이 시기에 완성된다는 것이다. 

 

원래 자유로운 인간이 점차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틀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살기 위해서 집을 선택하고 그 집을 꾸미지만 동시에 꾸며 놓은 집의 구조에 행동을 구속당하는 것과 같다. 이른바 내가 나를 만드는 동시에 만들어 놓은 나에 의해서 내가 지배당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면 자녀가 생각의 틀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생각의 틀은 단지 좋은 환경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본능에 부합되어야 한다. 성숙한 부모의 욕구가 아니라 아이의 욕구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2020년부터 유아교육기관에 적용되는 「2019개정 누리과정」에서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을 재정립하여 강조하는 것도 유아들의 욕구를 존중하여 생각의 틀을 바르게 형성하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내 아이가 이미 만5세를 넘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존주의자에 의하면 인간은 정적 실체가 아니라 생성, 변화, 발전의 계속적인 상태에 존재한다. 성인도 아직 변화의 여지가 있는데 아이들은 더욱 변화의 여지가 있다. 더군다나 인생에 필요한 것을 유아기, 아동기에 모두 제공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의 틀은 아이 스스로 만들지만 부모라는 강력한 환경에 의해 자유 의지가 꺾여버릴 위험도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syhaa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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