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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38] ‘문학으로 걷는 화성’을 읽다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   2019-12-09

▲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문학관 잡지에 담을 화성 풍경을 채집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관내를 여행자의 눈으로 떠돌아다닌다. 여름에 산 미색 구두 밑창에 구멍이 나서 구두 밑창에선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따그락 따그락 길바닥에 뒹굴던 돌멩이들이 구두 속에 박혀서 내는 소리. 처음엔 여간 창피한 게 아니었지만 이제는 외려 그 방울 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온다. 길 위에 선 자의 달콤한 피로감을 달래주는 음악처럼 말이다. 음악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길바닥과 나의 발바닥이 탬버린처럼 부딪히면서 내는 협화음이었을 것이다. 그 위로 음표처럼 튀어오르던 새들, 지휘봉처럼 흔들리던 나무들, 그리고 다감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던 사람들.

 

“음악은 쓸모없는 공간에 항상 새로이 자신의 신전을 짓는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돌들로” 릴케의 「올페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가장 많이 흔들리는 돌’이 되어 내 땅이 지닌 성스러움을 찾아가고 싶었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돌’이란 늘 새롭게 자신을 갱신하는 존재, 모든 사물을 대문 밖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의 경이와 설렘 같은 것으로 만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돌’이 될 수 있을 때 세상에 ‘쓸모없는 공간’은 단 한 평도 없다. 모든 땅이 경배해야 할 성서고 경전이다. 

 

‘낯선 곳에 가서 살고 싶다’ 나는 흔히들 하는 그런 말을 무척 쓸쓸해하는 편이다. 아무리 멀리 간다고 해도 자신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아무리 낯선 이역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자신이 새로워지지 않는 한 그는 그 이역을 자신의 몸처럼 살아갈 수가 없다. 또한 나는 ‘낯선 곳’이 지닌 어떤 유토피아적 함의 역시 믿지 않는다. 지금 이곳의 장소성을 부정하는 ‘유-토피아’는 살아 있는 존재의 근거를 뿌리째 거부하거나 외면하기 쉽다. 시공간을 해체시키는 디지털 정보혁명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삶은 장소 귀속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낯익은 곳을 낯선 곳으로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내가 발 딛고 선 대지의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싶었다. 

 

사실 늘 같은 풍경이란 없다. 풍경은 이미 굳어진 정물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에 따라 혹은 새로운 시선의 탄생에 따라 다채로운 빛깔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잘 한 평의 뜨락을 여행하는 데만도 하루 종일이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봄 문학관 뜨락에 심어놓은 옥매와 대추나무에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케 된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서 애무를 하고 물새들의 알을 품기에 여념 없는 화성의 육감적이고도 풍만한 굴곡은 참으로 매혹적인 데가 있다. 빗방울을 깨물어먹던 여름과 낙엽을 끌어 덮고 잠이 들던 가을, 동백꽃 봉오리 가득 품은 불을 터뜨리며 찾아온 겨울의 초입까지 발안과 매향리와 동탄의 곳곳을 누비며 그 매혹에 한껏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들 장소에 얽힌 노래와 이야기를 수집했다. 모든 문학이 지역문학은 아니지만 모든 좋은 문학은 지역문학이라는 믿음이 여행의 나침반이 되어준 길이었다.

 

문학은 살아 있는 대지를 포획하듯 지도 위에 함부로 그어 내린 경계선과 도시관광책자 보다 호명되지 않는 작은 삶의 단위들에 더 관심이 많다. 고백하자면 ‘도시계획’이라는 씩씩한 말이 지닌 광포한 직선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주름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은밀히 편애하는 편이다. 풍경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어야 하고, 명소 역시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추억과 사랑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풍경이라도 그 땅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땅의 이름으로 노래를 하고, 그 땅의 구체적 실감을 몸으로 살아내게 되면 그 장소는 모든 곳에서 환하게 꽃피어 나게 된다. 

 

한 해동안의 기획과 궁리의 결과물이 ‘노작출판학교’가 배출한 첫 출판사 ‘백조’가 발간한 『문학으로 걷는 화성』이다. 지역에서 나온 본격 단행본 출판물로서 지역의 인문지리적 상상력이 한껏 맵시를 부린 책이다. 문학관이 자신의 장소와 연대한 이 첫 결실이 지역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한 해의 끝은 바다만한 침묵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누가 저물면서 빛나는 게 바다라고 했던가. 그러니 바다를 면한 땅이여, 따그락 따그락 돌방울 소리를 울리며 올 노래를 또 기다려보도록 하자. 우리가 딛고 선 땅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노래의 울림이 바로 우리의 심장 박동음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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