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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긴 사연] “결혼식 날짜 잡고 처음 본 남편, 그땐 괜찮았는데…”

필리핀 여성 그레이실 M. 살던(Gracil M. Sardon)
8살 위 한국 남성과 결혼, “술 마시면 때려서 마음 아팠어요”
난소암 재발 항암치료 중, “딸이 말해요. 엄마 100살까지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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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기자 2019-08-30

▲ 한국 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 그레이실 씨가 휴대폰에 저장된 딸 얼굴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항암치료 하느라 머리를 삭발했다.     © 화성신문

 

분명 행복을 꿈꾸었을 것이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필리핀 여성이 선망의 나라인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적어도 그랬을 것이다.

 

11년 전인 2008년, 서른한 살 그레이실 M. 살던(Gracil M. Sardon)은 여덟 살 위 한국 남성을 필리핀 결혼소개 업체를 통해 알게 됐다. 자신의 얼굴 사진이 남편 될 사람에게 보내졌고, 남자는 여성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날짜가 전광석화처럼 잡혔고, 결혼식은 필리핀에서 올리기로 했다.

 

그레이실 씨는 남편이 될 김 모 씨의 얼굴을 필리핀 공항에서 처음 보았다. 공항에 도착한 김 씨는 티셔츠 차림이었다. 김 씨가 그레이실에게 결혼 패물로 준 것은 반지였다. 금반지도 아니고 은반지도 아니고 액세서리 반지였다. 그레이실이 받은 유일한 결혼 선물이었다. 결혼식날 시댁 측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랑 혼자였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2주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랑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어느 섬에 도착했다. 그레이실은 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엉클어지고 찌그러진 그레이실의 기구한 사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향에 도착한 남편은 직장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셔댔다. 친구랑 술을 마시면 며칠 씩 집을 비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레이실에게 손찌검을 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구박했다. 왜 맞아야 하는지, 왜 구박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레이실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2010년도에 딸을 출산했다. 이름은 김지희. 올해 10살, 초등학교 3학년생이다.

 

▲ 10살 된 딸 지희 책상.     © 화성신문

 

결혼 4년째 되던 해에 그레이실은 남편과 지희와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편은 1주일 만에 먼저 귀국했고, 그레이실은 딸과 함께 3주를 더 머물다 혼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딸과 같이 필리핀에서 살고 싶었지만 돈을 벌어야만 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딸과 헤어져야만 했다. 딸 지희는 그레이실의 엄마가 돌보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레이실은 남편에게로 가지 않았다. 아는 필리핀 사람의 소개로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에 취직했다. 공장 2층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생활했지만 환경이 열악했다. 피곤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야간조가 작업하는 기계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냄새도 심했다.

 

월급 170만 원 중에서 80만 원을 필리핀에 있는 어머니에게 매달 송금했다.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해 1년 반 만에 팔탄면에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여성의 힘으로는 다루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골병만 얻었다. 1년 만에 다시 장안면에 있는 회사로 옮겼는데 이번에는 근무 환경이 좋았다. 받는 돈은 비슷했다.

 

지인으로부터 남편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술을 마시던 남편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이었다. 그레이실은 남편 사망일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4년 10월 13일.

 

딸과 헤어진 지 3년이 지날 무렵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다니는 회사는 마음에 들었지만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썼다. 그레이실은 필리핀으로 가서 딸을 데리고 왔다. 2015년 4월 20일. 지희 나이 6살이었다.

 

그레이실은 팔탄면 파이프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고, 화성종합경기타운 근처 빌라에 거처할 곳을 마련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지희를 데려왔으니 필리핀으로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됐다.

 

▲ 딸 지희가 그린 가족사진과 '약속'이라고 적은 글이 냉장고에 붙여져 있다.     © 화성신문

 

지희는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이집에서 지희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오후 5시 30분. 그레이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빨라야 오후 5시 50분에서 6시였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해요. 내가 늦으면 지희 집 밖에 있어야 해요. 지희 한국말도 잘 못해요. 버스에서 내리면 계속 달려요. 집으로. 집 주인 없으면 지희 집 밖에 있으니까. 지희, 6개월 만에 한국말 다 배웠어요. 지금 한국말 잘해요. 아빠 닮아서 한국 사람처럼 보여요. 필리핀 사람처럼 안 보여요. 너무 예뻐요.”

 

그레이실의 말은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로 한국말이 서툴다. 지희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지희는 이제 혼자서 모든 일을 척척 해낸다. 태권도장에 다니고 싶어하지만 자신이 아프고 돈이 없어서 보내지 못하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제 조금 행복을 누릴까 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2월, 감기에 걸린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배가 많이 불러오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했다. 난소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항암치료를 하다 이듬해 4월 5일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 된 줄 알았는데 1년 만에 재발했다. 재발 후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위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한 달에 두세 차례 다닌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버스를 탈 수 없어 택시를 타야만 한다. 갈 때 올 때 하루 택시비를 합하면 8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던 중인 지난 4월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10평 규모 집에는 방과 거실과 주방 구분이 없다. 침대가 있으니 침실이고, 아이 책장이 있느니 아이 공부방이고, 작은 식탁이 있으니 주방이고, 텔레비전이 있으니 거실이다.

 

병원비도 만만찮고, 생활비도 필요하고, 아파트 관리비도 내야 한다. 필요한 돈은 많은데 직장이 없으니 수입이 있을 리 없다.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 줘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빨리 나아서 직장에 다니고 돈 벌어야 해요. 너무 미안해서요. 딸에게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 병원비 영수증들.     © 화성신문

 

그동안 그레이실을 돕기 위한 많은 손길이 있었다. 특히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다문화센터)의 밀착 지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문화센터는 지난 3년간 100회가 넘는 개입을 통해 ‘그림자 도움’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집 비용 보조, 초등학교 입학 과정 도움, 지희가 방치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지역아동센터 연계, 심리적 안정을 위한 미술심리치료 연계, 서포터즈 활동가와 여러 공공기관 연결, 후원 물품 전달, 아주대병원 사회사업팀과 지원방안 모색, 간병비 해결을 위한 민간기업 연결, 치료비 지원을 위한 굿네이버스 연결, 그레이실 거주지인 향남읍사무소 연결, 기초생활수급비 지원 도움, 현재 살고 있는 LH공공임대 아파트 신청 및 1년 후 입주 도움, 여권 갱신을 위한 주한 필리핀대사관 연결, 외국인등록증 변경을 위한 출입국사무소 방문 등 외부로 표시도 나지 않는 숱한 도움을 전개했다.

 

그레이실의 안타까운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엔트리움, 나눔솔루션 같은 기업들도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인 김인순 경기도의원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도 법적·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레이실은 2시간 남짓한 기자와의 만남 동안 다섯 차례나 눈물을 훔쳤다. 아파서였을까,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워서였을까, 도움의 손길이 고마워서였을까.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서였을까. 아마 모두 다였을 것이다.

 

지금 그레이실은 딸 지희, 자신의 간병을 위해 6개월 전에 한국으로 온 64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현재 그레이실 가족이 한 달에 지원받는 생활비는 이것저것 다 합하면 60만 원 정도 된다. 지출되는 비용은 병원비와 생활비, 교통비를 합쳐 150만 원 정도다.

 

“지희가 아주대 간호사 되고 싶어 해요. 지희가 말해요. 엄마는 100살까지 살아야한다고. 엄마랑 계속 살고 싶다고.” 이렇게 말하는 그레이실 눈에서 또 한 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레이실 가족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절망의 터널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기를, 지희의 밝은 웃음소리가 계속 들릴 수 있기를.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제 곧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다.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기사입력 :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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