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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77] 역경을 기회로 만드는 리더십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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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2019-08-12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화성신문

삼성이 전자산업에 뛰어든 것은 1960년대 말이다. 모직과 제당사업에서 좀 더 기술 집약적인 사업으로 다각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독자적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물건을 만들 기술과 경영노하우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회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산요전기와는 전자 부품공장(1969, 삼성산요전기주식회사, 삼성전기의 전신)을, NEC(일본전기)와는 TV브라운관 공장(1969, 삼성NEC주식회사, 삼성SDS의 전신)을 합작으로 세웠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는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세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일본인들의 기술지도 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1982년에 시작한 초고집적반도체(VLSI) 사업은 양상이 달랐다. 반도체 사업은 세계적으로 시작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의 위치가 가전 같지 않았다. 삼성은 일본보다는 미국 실리콘 밸리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생산에 집중하기로 하고, 미국 마이크론사(Micron Technology)로부터 64K D램 조립부터 배웠다. 그리고는 실리콘 밸리에 삼성의 연구소를 설립하여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하고 자체개발에 들어갔다. 이때 IBM의 왓슨연구소에 있던 진대제씨가 합류했으며,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를 마친 권오현씨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이 당시 사람들의 마인드는 ‘반도체에서는 일본을 이기자(克日)’였다. 반도체 초창기 멤버들은 삼성이라는 일개 사기업에 취업한 것이 아니라 극일이라는 국가적인 사명에 동참한다는 ‘운명’을 느꼈다 한다. 오죽 했으면 16K D램을 성공시키자고 64Km를 행군했겠는가. 이러한 집념과 도전으로 1994년 256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삼성이 우위에 있는 것은 반도체 개발과 생산기술이고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와 소재는 다른 문제였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서 장비의 국산화율은 현재에도 18% 정도에 그치고, 소재 국산화율은 50% 정도 된다. 장비는 미국에 45%, 일본에 28% 정도 의존하고 있으며, 소재는 국산 소재 외에는 거의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에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불화가스는 43.9%, 감광액은 91.9%, 그리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93.7%나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자신이 반도체 사업부장을 하고 있던 25년 전에도 이런 걱정을 했었다고 토로했다. 삼성반도체가 망할 수 있는 시나리오 두 가지. 하나는 반도체 강자인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 뛰어드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이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들의 장비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 이 두 번째가 현실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25년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태까지 뭐하고 있었는가”고 말이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거래의 문제이고 비용을 따지고 손익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국산화’와 ‘독립’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상호의존하고 협력하면서 상생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회사 중에 ASML이라는 광학기계 장비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1984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회사인데 한국 반도체 산업과 맥을 같이 하면서 성장해오고 있는 회사이다. 이렇듯 서로 협력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는 이런 관계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감수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었다.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 기업들은 많이 배웠으며 한 단계 성장했다. 국산화를 표방하며 정부의 보호를 받았던 남미 기업들은 일찍이 경쟁력을 잃었지만, 수출을 표방한 한국과 대만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그만큼 어려움을 겪으며 야성을 길렀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업을 강하게 만들고, 위기가 기회인 것이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진리이다.

 

그럼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 위기일수록 멀리 보아야 한다. 배의 갑판에 부딪히는 파도와 싸우지 말고 멀리서 불어오는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고통을 학습으로 바꾸고, 역경을 통찰로 승화시키고, 좌절이 새로운 가치로 전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오랫동안 삼성전자 CEO를 역임한 권오현씨는 그의 저서 ‘초격자’에서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格, level)을 높이라’고 했다. 일본 아베 정부의 비상식적인 행태가 우리 산업의 격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choyho@ajou.ac.kr

기사입력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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