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선 칼럼│ 예술과 도시 이야기]
새해와 새해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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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기사입력 2024-02-07 [08:56]

▲ 장동선 소다미술관 관장  © 화성신문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1894년 갑오개혁 태양력이 공식적으로 도입되면서 단발령과 함께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시행된 불운의 양력설은, 음력설을 쇠는 것이 항일독립운동의 의미로 여겨지며 정착되기 어려웠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의 환심정책으로 두 설날이 모두 공휴일이 된 이후, 설날의 선택이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태양력의 새해 1월 1일이 지나도 새로운 프로젝트의 전투적인 시작은 음력설을 고려해 뒤로 미루게 되면서, 양력과 음력 새해 사이에 애매한 시간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마 미셸 투르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 한해가 끝났지만 아직 새해가 시작되니 않는 사이의 ‘시간의 공백’이 우리에게 두 번이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새해와 새해 사이처럼, 이러한 공백은 시간뿐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묘한 기능을 가지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로 열어 놓은 다양한 타이포그래피의 세상은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대중에게 캘리그래피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의 유명한 2006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학교를 중퇴하고도 학교에 머물면서 생겨난 시간의 공백에 교양 과목인 캘리그래피 수강(도강이 정확하겠다)이, 그의 애플 컴퓨터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서체 디자인은 글자와 글자 사이, 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빈 공간의 안배와 균형이 훌륭한 서체를 만드는 것이라 배웠다고 했다. 우리는 검은색 부분을 보기 때문에 공백을 느끼지 못했지만, 서체 디자인은 흰 영역 즉 공백의 영역의 디자인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어떻게 비우고 얼마의 거리를 두느냐에 사용자의 보기와 읽기의 경험은 크게 달라진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도 그렇다. 건축이란, 벽을 세우고 공간을 만들고 짓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오히려 벽을 세워서 의도적으로 정교한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설계의 결과물이라고도 한다. 건축계에서는 이렇게 채워지지 않은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한다. 보이드는 건물의 로비와 중정, 도시적으로 보면 광장이나 공원과 같은 열린 공간으로, 사용자의 동선이 집중되는 중심적인 공간이 된다. 정교하게 설계된 빈 공간은 성격과 기능이 다른 공간을 매개해 주고, 다양한 가능성이 만나는 교류의 공간이며, 자연스럽게 이용자의 쉼의 공간이 된다. 미술관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빈 공간들을 만들어 낸다. 과거 화력 발전소를 재생하여 만든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은 입구와 연결된 복도 공간이며, 거대한 빈 공간이다. 초대형 설치 작품이 전시되기도 하고,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그냥 비워 두어 방문객들의 만남의 장소나 쉼의 장소로 두기도 한다. 비어 있어서 애매하기에 새로운, 창의적인, 계획하지 않은 것들을 기대할 수 있다.

 

2024년 새해와 새해 사이, 새로운 한 해의 계획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로, 이루어야 할 목표들로 두툼한 다이어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침묵하여 자신을 고요히 바라보는 비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가 세심하게 계획해서 만들어 낸 사이의 빈 공간처럼,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빈 공백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우리도 잠시 스마트폰 화면에서, 다이어리에서 눈을 떼고 우리가 만든 사이의 시간에서 새로운 시선이, 시도가, 이해가 그리고 아름다움이 생겨나게 계획적으로 비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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