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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박병진 ㈜밀박사람들 대표이사
“맛과 위생, 두 마리 토끼 동시에 잡았죠”

“맛있다” 소문 ‘백년미가’ 브랜드, “전문가도 맛보고 반했죠”
순 우리말 ‘밀박’은 ‘큰 바가지’ 뜻, “세계인 입맛도 잡아야죠”
“신뢰는 목숨처럼 지켜야 할 가치, 자기 자리 온전히 서 있을 때 가능”
백종원 대표 더본코리아에도 납품, “성실과 끈기로 못 이룰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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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2020-09-18

▲ 박병진 대표가 집무실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 화성신문



 

농사지으세요?”

 

빵 만드시나요?”

 

회사 이름이 독특해서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들이 가끔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밀박사람들이라는 회사 이름에서 따뜻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이유다.

 

밀박은 순수 우리말로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회사 로고(이미지 참조)도 선조들이 먹거리를 담아내던 노란 바가지의 선을 형상화한 것이다. 노란 바가지 선 안에 들어있는 붉은 색은 주 생산품목인 육류를, 녹색은 청정한 식품을, 청색은 안전한 식품을 각각 상징한다.

 

화성시 안녕북길(안녕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밀박사람들은 20년 전통의 육가공 전문기업이다. ‘백년미가라는 브랜드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양념해서 판매한다.

 

맛있어요. 제가 만들지만 정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홈앤쇼핑이라고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홈쇼핑방송에도 방송됐었어요. 전문가들이 직접 맛보고 평가하는데, 저희 백년미가가 고기 식품 분야 1등을 차지했습니다. 국민 입맛도 잡고, 세계 입맛도 잡아야지요.”

 

밀박사람들 박병진 대표의 이런 자랑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건 그의 선한 얼굴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박 대표의 선한 매력에 은근히 끌리게 된다.

 

제가 식품육류사업에 처음 몸담으면서부터 지금까지 목숨처럼 지키고 있는 게 위생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니까요. 제가 제 몸을 아끼고 돌보듯 저희 제품을 드시는 분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맛과 위생, 동시에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죠.”

 

박 대표가 경영자로서, 리더로서, 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뢰다.

 

신뢰는 그냥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전히 서 있으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고귀한 가치예요.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목숨처럼 여겨야 할 가치예요.”

 

 

▲ 백년미가 제품 중 하나인 고추장돼지불고기.  © 화성신문



 

대기업 급식, 8곳 중 7곳 거래 경험

 

박 대표가 백종원 요리연구가가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억척스러우리만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박 대표가 고기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31년째다.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을까.

 

어느 날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친형이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전망 있는 사업이 있는데 둘이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그렇게 제가 고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1990120일이에요. 경영학을 전공한 제가 영업을 뛰고, 법대를 나온 형이 관리 쪽을 맡았어요. 돼지고기를 발골해서 부위별로 박스 포장해서 정육점과 시장에 유통시켰습니다. 고속 성장했어요. 직원도 수십 명이 될 정도로 회사가 커졌고, 공장까지 지었어요. 그렇게 형과 10년을 같이 하다 제가 11년째 독립했습니다.”


 20008. 박 대표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에 해오던 대로 육류 유통업이었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안양시 호계사거리에서 시작된 사업가로서의 우여곡절 인생은 그렇게 시동이 걸렸다.

 

수입업체 물건 떼다가 냉장고에 보관한 후 팔려고 하면 가격이 내리는 거예요. 만 원 주고 샀는데 며칠 지나면 9,500원하는 식이예요. 운이 없어서 그런지 늘 손해를 봤어요. 그때 배송차량을 다섯 대 굴렸거든요. 고민하다 제조업을 하고 싶어서 2002년도에 군포로 사업장을 옮겼어요. 식육포장처리업으로 제조업 허가도 받았어요. 유통업과 제조업을 병행한 겁니다. 2003년도에는 호주 제품을 직수입했어요. 1년간 직수입했는데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제조에서 번 돈을 유통에서 까먹은 거지요. 하하.”

 

박 대표는 창업 초기에 앞으로 5년 후면 현재 방식의 유통 사업이 한계 상황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견했다. 업계 상황은 박 대표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박 대표가 고민 끝에 찾은 돌파구는 학교 급식이었다. 2006년 시작한 학교 급식은 재미가 쏠쏠했다.

 

고기를 잘라서 박스로만 판매를 하다가 학교 급식을 하게 된 겁니다. 기계들을 새로 들여놓고 시작했는데 꽤 괜찮았어요. 69개 학교에 납품할 정도로 좋았어요. 당시에는 학교에서 외주를 줬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경 학교 급식에서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어요. CJ사건으로 불리는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죠. 법이 바뀌면서 학교 급식도 직영으로 바뀌었습니다. 식중독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장이 책임을 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학교 급식의 단점이 방학만 되면 하늘만 쳐다보게 된다는 거였어요. 2010년에 학교 급식 사업을 접었습니다. 과천외국어고등학교 납품을 마지막으로.”

 

그 무렵 공장을 화성으로 이전했다. 지금의 위치다. 2009년도 10월 공장을 짓기 시작해 20104월에 입주했다. 새로운 활로를 찾던 도중 대기업 급식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이전하자마자 삼성 에버랜드를 찾아갔습니다. 지금의 웰스토리죠. 담당자에게 수도 없이 전화하고 발품을 팔았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2개월 만에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현대 그린푸드, 아워홈, 동원, 풀무원 푸드머스와도 거래를 텄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8곳 중 CJ만 빼고 다 거래를 했어요.”

 

 

▲ ㈜밀박사람들 로고.  © 화성신문



 

홀로서기로 빈대 신세 벗어나기

 

박 대표는 대기업 중 첫 거래한 삼성과는 20115월부터 201612월까지 거래했다. 하루에 5~6톤 물량을 작업할 정도로 거래량이 많았다. 그런데 왜 거래 관계가 끊어졌을까.

 

“201610월 어느 날 담당 과장이 부르더군요. 내년에는 입찰을 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건물을 새로 지은 다른 업체가 발가벗고 달려들 거라고 하면서. 한마디로 납품 단가를 낮추라는 요구였지요. 처음 거래할 때도 다른 업체가 700원에 납품하던 걸 620원으로 낮춰서 들어갔었어요.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었거든요. 사실 2015년부터 거래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어요. 보름 동안 고민하다 거래를 접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박 대표는 그때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깨달음의 요체는 빈대 신세 벗어나기였다.

 

삼성과 거래를 끊으면서 확실히 깨달았어요. 빈대 신세를 벗어나야 되겠구나. 내가 살길은 그 방법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대기업에 빈대 붙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홀로서기를 위한 노력을 그 이전부터 시도했었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의욕은 충천했지만 홀로서기를 위한 몸부림은 좌절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박 대표의 홀로서기 첫 노력은 인터넷 판매였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생각과는 달리 성장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박 대표의 두 번째 홀로서기 시도는 외식 분야였다. 급식 분야와 외식 분야는 차이가 컸다. 기계부터 달랐다. 급식에는 단순 절단 기계들이 필요했지만, 외식에는 포장하는 기계들이 많이 있어야 했다. 투자 규모에 비해 결실은 적었다.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박 대표의 성실성과 인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 에버랜드와 거래하기 위해 12개월 공을 들였듯이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16년부터 샘플을 들고 담당자를 수십 번 찾아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방문했다. 2017년도에 두세 박스씩 납품하다가 2018년도에는 한 번에 100박스를 주문할 정도로 거래량이 늘었다. 그리고는 매주 1.5톤에서 2톤씩 납품했다.

 

두세 박스 납품할 때 우리 영업부장이 그러더군요.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왜 계속 하느냐고. 제가 이야기했죠. 지금까지 노력해온 게 아깝지 않느냐고. 사실 제 내심으로는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제품에 자신이 있는데 언젠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결국 길이 열렸지 뭡니까. 하하. 감사하죠. 사업한다는 게 이런 재미지요. 코로나 때문에 올해 2월부터 물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곧 물량이 회복되겠지요.”

 

박 대표는 백종원 대표 장인어른이 별세했을 때 조문 갔다가 백 대표와 첫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때 백 대표는 밀박사람들이라는 회사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 박병진 대표는 책상에 놓인 지구본을 보며 세계시장을 무대로 뛰고 싶다고 했다.  © 화성신문



 

미래 먹거리, 프랜차이즈 사업 꼭 하고파

 

이병철 회장 어록에 10년 후에 뭘 먹고 살 것인지 생각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맞는 말이예요. 중소기업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1, 2년은 먹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면 그냥 어느 순간 순식간에 끝나는 겁니다.”

 

박 대표는 평소에도 늘 10년 후를 생각한다고 했다. 박 대표의 홀로서기 세 번째 시도는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지난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한 TF팀을 꾸렸다. 팀원들과 함께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을 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다녔다. 상호명은 모밍쿡’. 퓨전 레스토랑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맛과 요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음식 메뉴도 거의 세팅된 상태다. 모밍쿡 본점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밍쿡 강남점, 모밍쿡 분당점, 모밍쿡 부산점. 이렇게 100호 가맹점만 나오면 공장가동률도 크게 높아집니다. 공장이 풀로 돌아갈 거예요. 100호 가맹점 나오는 순간이 홀로서기 첫 단계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빈대 신세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게 되는 거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멋진 재도약을 꿈꾸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밀박사람들이 만든 백년미가 제품을 맛본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다. “~ 맛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양념을 할 때도 양파와 배 등을 갈아서 만든 천연조미료를 고집한다. 박 대표는 제품 품질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

 

박 대표가 지금 에너지를 쏟고 있는 분야는 홈쇼핑 방송, 인터넷 판매, 그리고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품질에 자신이 있기에 언제든 대박을 칠 가능성이 있다.

 

박 대표는 외유내강형이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인지 18,000만 원, 5,000만 원 등 적지 않은 금액의 사기를 몇 차례나 당하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눈가에 물기가 촉촉해진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아이고~. 어려웠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네요. 그래서 잠시.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지요. 지금까지 직원들 급여를 딱 한 번 며칠 늦게 지급한 것 빼고는 어김없이 제 날짜에 급여를 주고 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목숨 걸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게 대표의 책임 있는 자세죠.”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는 뜻의 수풍정(水風井)을 닉네임으로 쓰고 있다는 박 대표의 좌우명은 바르게 살자. 가족과 사랑, 지혜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그의 유일한 취미는 3년 전에 뒤늦게 배운 골프다. 박 대표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매일 아침 성경구절을 읽고, 읽은 구절 옆에 읽은 날짜를 기록한다. 2015년부터 생긴 습관이다.

 

오래 전 아내에게 배낭여행 가자고 약속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네요. 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할 텐데, 늘 미안하죠. 하하.”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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