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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도와 효의 교육화 02] 정조의 행적을 찾아서 - 효(孝), 궁(弓)

정지산 화산정 건립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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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기사입력 2020-03-23

▲ 정지산 화산정 건립 추진위원장     ©화성신문

정조(조선 22대 임금, 1776년~1800년, 재위 24년)는 세자시절 ‘존현각’에서 기거했다. 이때, 매일 일기를 쓰셨다고 하여 이를 ‘존현각 일기’라 한다.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책이다.

 

정조 7년 이후 규장각 관원이 일기를 이어 쓰기 시작했으며, 이는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작성한 후 왕의 재가를 받은 공식적인 국정 일기인 국보 153호 ‘일성록’(2,329권,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의 전신이다. 

 

본 글은, 정조의 재위 기간 중 있었던 총 66회의 궁궐 밖 나들이 중 13차례의 화성행궁 방문에서도 특히 정조 19년(1795년, 을묘년) 윤 2월9~16일까지 총 8일간의 행적을 ‘일성록’에서 발췌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2월 9일 - 정순왕후에게 인사하고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창덕궁 동화문을 출발하여 노량진 용양봉 정에 점심을 들고, 시흥 행궁에서 숙박하다.

 

2월 10일 - 시흥 행궁을 출발하여 사근 행궁에서 점심을 드신 후 저녁에 화성행궁에 도착하다.

 

2월 11일 - 향교 대성전에 전배, 낙남헌에서 문무과 별시를 거행하고 시상했으며,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를 위한 회갑연 예행연습 하다 

 

2월 12일 - 아침 일찍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릉원’에 참배하다. 오후에 서장대에 친림하여 군사 훈련을 하다

 

2월 13일 -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를 회갑연을 하다

 

2월 14일 - 양로연 행사와 화성시찰을 하고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매화포를 터트리다.

 

2월 15일 - 화성행궁에서 출발하여 한양도성으로 출발하다.

 

이상은 을묘년 2월 14일 화성 행차의 간략한 서술이며, 이중 ‘득중정’ 활쏘기를 짚어보기로 하자.

 

여섯째 날에 ‘득중정’ 활쏘기는 신시(申時, 3시~5시)에 정조임금께서 득중정(得中亭)에 가시어 어사(御射)에 관계된 사람 중 영의정 홍낙성 외 20여 명이 입시하여 시행하였으며, 유옆전(柳葉箭) 6순(巡) 24시(矢)를 맞추시고 말씀하시기를 “활쏘기는 비록 육예(六藝) 가운데 하나의 일이나, 또한 기술에 가까움으로 포기하고 익히지 않는 것이 이미 4년인데, 금일의 적중은 역시 우연일 뿐이다”라고 하셨다 하여, 겸손의 미덕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어 여러 신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날이 저문 후에 또 작은 표적(小的)을 설치하고 횃불 2개를 좌우(左右)에 벌려 놓으라고 명하시며, 어사(御射) 2순(巡)에 5시(示)를 얻고 활쏘기를 끝냈고, 매화포를 터트렸다고 한다.

 

이처럼 활쏘기는 일상화되었으며, 유교적 덕목을 함양하는 육예(공자의 육예 사상)의 하나로 국가이념과 선비로서 익혀야 할 덕목으로 숭상하고 권장하였다.

 

공자의 육예 사상(禮,樂,射,御,書,數) - 3번째는 “활을 쏜다”를 말함

 

예(禮)로 시작하여 예(禮)로 마무리되며, 모든 무예의 바탕인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개인의 행복과 건강, 체력증진을 추구하는 스포츠 문화이며, 여가시간을 건설적, 교육적으로 사용하여, 긴장을 해소하고 공격적, 억압적인 감정을 순화한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정신수양의 스포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시대에도 옛 역사를 상기하는 의미에서 궁도의 의미를 되살리고 활성화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수양을 하는 데 최상의 선택이 되리라 본다. 

 

정조대왕이 계신 곳 옆에 국궁장을 설립하여, 화성시민 및 지역사회 주민들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화성시 동부권에 궁도장 건설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 득중정에서 정조가 활쏘기를 하여 기록한 문헌(이요헌일절사자상첩)     ©화성신문

 

▲ 정조의 친필로 쓰여진 득중정 현판     ©화성신문

 

▲ 화성‘득중정’고풍 연부 이요헌(연부 : 지금의 부사단장급, 군영계급. 이요헌 : 가운데 글자가 임금 ‘요’ 라 삭제됨.     © 화성신문

 

▲ 일성록.     ©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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